인간의 디폴트는 여자다!
by ssh
인간의 디폴트는 여자다: 성염색체와 발생학이 증명하는 생명의 기본값
오랫동안 인류 사회에는 "여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변형된 존재"라는 잘못된 생물학적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서양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열이 부족하여 완성되지 못한 남성'으로 규정했고, 신화적 서사 속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에서 비롯된 부차적 존재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현대 발생학과 성유전학이 밝혀낸 진실은 이 오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생명체로서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신체적·생물학적 기본 설계도(Default setting)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먼저 성 결정과 유전자와 관련된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유전학의 창시자 멘델이 19세기 중엽에 발견한 유전법칙은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과학계의 인정을 받았는데, 20세기 첫 해에 세 명의 생물학자가 각자 독립적으로 똑 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던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결론은 멘델의 발견과 같았고, 이로써 멘델의 유전법칙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9년에 ‘유전인자(gene)’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리스어로 ‘탄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현미경으로 동물과 식물의 세포를 관찰해 보면, 막으로 둘러싸인 둥근 핵이 보이고,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밝은 색의 실처럼 보이는 염색체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경우, 정상적인 세포의 핵은 23개의 염색체 쌍을 가지고 있는데, 난자와 정자에는 각각 23개의 염색체가 있고, 따라서 이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형성되는 사람의 세포는 23쌍의 염색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들 23쌍의 염색체들은 그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쌍을 이루는 두 염색체들은, 크기와 모양 등이 서로 대응되지 않는 X 염색체와 Y 염색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정확히 같게 보인다.
과학 지식의 부재로 인해서, 성과 생식의 그 특별한 관계를 전혀 알 수 없었던 1667년, 최초의 현미경 학자인 레이우엔훅가 정액 속에 정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처럼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미세 동물이 난자로 들어가서 수정될 것이라고 가정하긴 했지만, 그 후 2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이 가설은 증명되지 못 했다. 그리고 멘델 역시 ‘유전인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음을 물론이다.
1854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개구리와 성게의 수정(fertilization)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현미경 학자들에 의해서 암수 배우자의 융합 과정이 그림 등으로 상세하게 기록되고 서술됨으로써 성(sex)과 생식의 관련성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1879년에 독일의 생물학자들은 세포 속의 ‘염색체’를 발견했는데, 알칼리성 아닐린 염료를 이용하면 투명한 세포핵의 미립물질을 쉽게 염색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염색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로써 그들은 세포 분열의 전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는 멘델의 유전이론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고, 이 생물학자들은 멘델의 유전이론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멘델의 유전이론을 알고 있었다면 ‘세포의 분열과정은 멘델의 유전이론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을테고, 그러면 염색체와 ‘유전인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초기의 답을 보다 20세기가 오기 전에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둘의 관계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서턴이었다. 그는 1903년에 세포의 염색체와 멘델의 유전인자 사이에 평행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메뚜기(Brachytola magna) 정소의 시원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메뚜기 정소의 시원세포들이 감수분열을 거쳐 정자로 변환됨을 관찰하였다. 그는 메뚜기 정소에 있는 시원세포가 감수분열 전에는 총 24개의 염색체를 가지며, 이 중 22개는 서로 그 크기와 모양이 일치되는 11쌍으로 구성된 상염색체들임을, 그렇지만, 나머지 2개의 염색체는 서로 크기와 모양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두 염색체를 성염색체라고 명명하면서, 둘 중 큰 염색체를 X 염색체, 작은 염색체를 Y 염색체라고 불렀다.
그 실험에서 시원세포의 감수분열로 생성된 정자들은 두 종류가 관찰되었는데, 생성된 정자의 절반은 11개 상염색체와 X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11개 상염색체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암컷 메뚜기에서 생성된 모든 난자는, 11개 상염색체와 X 염색체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된 관찰을 통해서, X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 염색체를 가진 난자와 수정되면 XX 염색체를 가진 암컷 메뚜기로, Y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 염색체를 가진 난자와 수정되면 XY 염색체를 가진 수컷 메뚜기로 성장함으로 관찰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턴은 X 염색체와 Y 염색체가 성을 결정한다고 결론내렸다.
1902년과 1903년에 서턴은 자신의 연구 결과와 함께, 독일의 보베리, 뉴욕의 윌슨, 그리고 여러 연구자들이 제시한 이론들과 실험적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최초로 염색체설을 제안하게 된다. 서턴은 1902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부계와 모계 염색체들의 쌍 형성과 감수분열 동안 이들이 분리되는 것은 ... 멘델의 유전법칙의 물리적 기초를 구성할 것”이라고 제안하였고, 1903년에는 염색체가 멘델 유전 단위를 운반한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세포학과 유전학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유전학 연구에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미국의 모건은 이 지름길의 최초 수혜자였다. 그는 초파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초파리가 기르기도 쉽고 한 번에 200 마리 정도가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초파리는 태어난 지 2주가 지나면 생식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연구 주기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멘델이 완두를 이용하여 손자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성질과 형상 차이를 밝히는데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물론 연구 주기를 단축한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모건이 유전학 연구의 지름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는 초파리의 세포 내 염색체 수가 완두에 비해 훨씬 적고, 그 중 일부는 일반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들 들어, 초파리의 몸은 일반적으로 작고 길이가 3 센티미터 정도로 황갈색 몸에 녹색 눈을 가지고 있는데, 모건은 자세한 관찰 결과로 초파리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특징이 다른 모든 생물의 성질처럼 유전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모건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유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이해함으로써 멘델 법칙의 확인과 함께 멘델 법칙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새로운 유전법칙인 ‘성별 유전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생물의 성별 유전은 성염색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생물의 성별 유전인자는 ‘성염색체’ 상에 있고, 바로 이 성염색체가 성별 유전인자의 물질적 책임자라는 것이었다. 이 발견으로 생식과 성별 결정의 비밀도 그 베일을 벗게 된다. 모건은 자신이 발견한 생명체의 실제 유전방식이 멘델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 몇 년 동안의 실행과 탐구를 거쳐 모건은 마침내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몇 가지 유전자의 염색체 상의 위치를 실험적으로 추정함으로써 초파리가 가지는 4 쌍 염색체 상에 각 유전자가 물리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유전자의 위치도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렇게 ‘유전자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서턴과 모건 등의 연구 결과로 성별의 수수께끼도 마침내 풀리게 되었다. 이 때부터 유전학은 공상의 시대를 끝내고 위대한 발견이 계속 이어지면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 중 하나가 됐다.
언급한 바와 같이, 생명체 중에서 많은 종들은 암수 구별이 있고 유성 생식을 통해서 자손을 생성하게 된다. 그런데,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무성 생식이라는 방법인데, 사실 유성 생식을 하는 종들이 출현하기 전의 약 10억 년에 걸쳐 생물들은 이 무성 생식을 통해 번식하였다고 한다.
무성 생식에서는 부모가 어느 한 쪽만 있어도 충분하다. 대부분은 아니지만 많은 식물들이 이 무성 생식이라는 방법을 통해 번식하는데, 정원수의 가지를 잘라 땅에 심는 경우도 무성 생식이다. 또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이 반으로 분열하여, 2개의 딸세포를 만드는 이분법의 경우도 무성 생식이며,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류 중에는 포자법으로 번식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들 포자는 날아가서 그대로 새로운 곰팡이나 버섯으로 성장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 역시 무성 생식의 일종이다.
동물 중에도 무성 생식을 하는 종류가 있다. 물론 무성 생식을 하는 동물은 일부 하등 동물에 제한되어 있긴 한데, 예를 들어 동물 중에서 가장 간단한 종인 해면 동물은, 단순히 세포들을 뿌리면 그것들이 새로운 해면 동물로 자라게 된다. 해파리의 친척인 히드라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개체가 쑥 솟아나와 독립하게 되는데, 이 기묘한 무성 생식법을 '출아법'이라고 부른다. 해파리의 또 다른 친척인 말미잘은 번식을 할 때에는 간단히 몸 중간 부분이 둘로 나누어지고, 2개의 새로운 개체가 생긴다.
어떤 편형 동물들은 번식을 하고자 할 때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간다. 그리고 이 잘려 나간 조각 하나하나가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다. 물에 잠긴 통나무나 돌 밑바닥에 붙어 사는 플라나리아가 바로 그러한 편형 동물이다.
그렇지만 진화의 사닥다리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무성 생식은 점차 보기 힘들어진다. 척추 동물(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이 무성 생식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특이한 양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가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무성 생식이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는 난자가 정자와 수정을 거치지 않고, 혼자서 새로운 개체로 발생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것을 '단위 생식' 또는 '처녀 생식'이라 하는데, 어류와 양서류, 도마뱀류 중 몇몇 종에서 볼 수 있다.
배우자의 존재 없이 쉽고 간단하게 번식을 할 수 있는 무성 생식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척추 동물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곤충이나 거미류, 게, 바닷가재, 지렁이 따위도 반드시 암컷과 수컷의 교미를 통해 유성 생식을 한다. 짝을 찾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교미에 필요한 복잡한 생식기를 갖추어야 하는 번거러움에도 불구하고, 유성 생식은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무성 생식을 하는 가장 간단한 동물도 경우에 따라서 유성 생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동물들이 이토록 집착하는 유성 생식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다양성’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무성 생식의 경우는 부모를 그대로 복사한 개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개체들은 겉모습만 같을 뿐 아니라 간혹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예외로 한다면 유전적으로도 동일하다. 그런데 모든 개체들이 유전적으로 똑같은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만약 한 호수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이 특정 균에 민감하다고 가정할 경우, 그 균이 호수에 흘러 들어오면 그 물고기들은 모조리 전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그 균에 덜 민감한 변종들이 있다면, 그들 중 일부 물고기는 살아남아서 대를 이어 갈 수 있게 된다. 집단 내에서의 다양성, 이것이 바로 유성 생식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왜냐하면 수컷과 암컷이 교미를 통해서 수정이 될 때 수컷과 암컷의 유전 물질이 혼합되고, 그래서 새로운 개체들은 부모로부터 서로 다른 유전자들을 물려받게 되며, 따라서 어떠한 개체도 똑같은 유전자 세트를 가질 수 없다. 똑같은 부모에게서 난 개체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단 예외가 있다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사람의 수정란(zygote)은 유성 생식, 즉 정자와 난자가 융합(fuse)되고 다시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되는데, 정자로부터 받은 한 개의 성염색체와 22개의 보통 염색체(상염색체) 그리고 난자로부터 받은 같은 수의 염색체들을 갖게 된다. 유성 생식의 경우 수정이라는 과정으로 완전한 23쌍의 염색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때 오로지 X 염색체만을 가질 수 있는 난자가 X 성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정자와 수정하게 되면 그 수정란은 결국 XX 염색체을 갖는 수정란이 될 것이고, 반면에 정자의 성염색체가 Y 염색체일 경우에는 그 수정란이 XY 염색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경우 수정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인자는 남성의 염색체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X 염색체나 Y 염색체 중 어떤 염색체를 받느냐에 따라 자식의 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XY 염색체를 갖는 사람의 수정란은 자라서 남성으로 자라게 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성별을 결정하는 특별한 단백질과 관련된 유전정보가 Y 염색체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별한 단백질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인데, 미국의 이치월드는 마우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남성만이 특정 항원 단백질을 갖고 있음을 보였다. 1960년에는 영국의 빌링햄가 좀더 정밀한 실험을 통해서 이 단백질을 조직적합성-Y 항원(histocompatibility-Y antigen 또는 H-Y 항원)이라고 명명했고, 그 후 독일의 울프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동물들에 있어서 수컷(남성)은 이 H-Y 항원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즉, Y 염색체를 갖고 있는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통해서 태아가 되는 과정 중에서, 아직 미분화된 상태일 때 생식기관의 세포막에 이 H-Y 항원이 생성되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져 있진 않지만, 이 H-Y 항원이 미분화된 생식기관을 성숙한 정소(testis)로 발육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한편 일단 정소의 형성이 시작되면 사람의 성별을 결정짓는 Y 염색체의 임무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에 나타나는 생식기관의 발육이나 남성적인 체격·외모와 같은 수컷(남성)으로서의 성징 발달은 정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컷(여성)의 경우에는, 그 성 결정이 H-Y 항원과 같은 특별한 물질의 도움에 의한 것이 아니고, 두 개의 X 염색체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그 염색체들에 있는 유전정보의 조절(물론 이 경우에 각 세포마다 두 개의 X 염색체 중에서 임의적으로 선택되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X 염색체에 있는 유전정보가 발현된다는 X-inactivation도 고려해야 한다.)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여성은 Y 염색체가 없으므로 H-Y 항원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응하는 수용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개의 X 염색체 내에 있는 유전정보의 조절에 의해 태아의 생식기관이 생성되고, 그 이후에는 미분화된 생식선이 정소 대신 난소(ovary)로 분화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남성은 사춘기가 될 때까지 정자의 형성이 억제되는 반면 여성은 태아 때부터 수백만 개의 소난포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소난포들이 자라서 성숙한 난자가 된다.
사람의 성별을 구별짓는 방법(즉, 성별판별법)으로는 연구된 시간 순서에 따라서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XY 염색체에 기반한 것이고, 두 번째는 H-Y 항원의 존재여부로 판단하는 방법이며, 세 번째 방법은 SRY(sex determining region of Y, Y 염색체 내 성결정 유전자) 유전자의 유무를 살피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남성을 결정하는 1차적 결정자는 Y 염색체 전체가 아니라 SRY라고 하는 단일 Y 염색체 내의 특이적 유전자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남녀의 성별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SRY 유전자 또는 그 단백질의 유무라는 것인데, 정상인의 경우 SRY 유전자는 Y 염색체의 진정염색질(euchromatic)에 위치해 있다.
SRY 유전자가 남성을 결정한다는 과학적 추론은, 성염색체 이상증 환자들의 염색체 구조와 그에 따른 성전환(sex reversal) 현상에 대한 연구로부터 도출되었다.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형적으로는 여성인 성염색체 이상증 환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Y 염색체의 진정염색질에 마땅히 있어야 할 SRY 유전자가 없거나 기능이 훼손된 돌연변이 SRY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나 외형적으로 남성인 성염색체 이상증 환자의 경우에는, X 염색체에 Y 염색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SRY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반한 SRY 유전자에 대한 가설은, 그 후 생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정말로 SRY 유전자가 수컷(남성)을 결정한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다.
Y 염색체에는 약 110개의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자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Y 염색체의 양 말단은 X 염색체의 말단과 각각 상동이기 때문에 위상염색체 부위(pseudoautosomal regions, PARs)라고 명명되었다. 두 PARs (PAR1과 PAR2)는 30개 정도의 유전자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은 X 염색체와 Y 염색체 양쪽 모두에서 발견된다. 한편, Y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의 대부분은 남성 특이적 부위(male-specific region, MSR)라고 불리며 SRY 유전자와 정자 형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Y 염색체의 경우와 달리, X 염색체는 약 1,100 개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성 결정과는 관련이 없는 유전자들로서,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에 필요한 단백질들이 암호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SRY 유전자가 있을 경우에는 남성이 되고 SRY 유전자가 없거나 기능이 훼손될 경우에는 여성이 될까? 수정 후 약 6주가 지나면, SRY 단백질은 XY 염색체(혹은 성염색체 이상증으로 인해 성전환된 XX 염색체)를 가진 배아에서 정소 발달을 활성화시키는데, 배아의 정소는 남성 생식기관의 발달을 촉진하거나 여성 생식기관의 형성을 저해하는 호르몬들을 분비한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SRY 단백질이 존재하지 않으면, 정소 대신에 난소가 발달하고, 이어서 여러가지 여성 생식기관들이 발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여기까지 정리해 보자.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거쳐 자궁에 자리를 잡는 임신 초기의 순간부터 임신 6주~7주 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배아는 외형적으로나 내부 생식기 구조상으로 완전히 동일한 형태를 띤다. 이 시기의 배아는 남성과 여성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는 '무분화 생식선(Indifferent gonad)'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분화 상태에서 생명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발달의 기본 방향성이다. 배아에게 아무런 추가적인 외부 신호나 호르몬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때, 신체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생식기 구조인 난소, 자궁, 질 상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즉, 인간은 특별한 '개입'이 없는 한 여성으로 태어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여성화는 무언가가 추가되어야만 이루어지는 복잡한 과정이 아니라, 생명이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 도달하는 자연스러운 기본 경로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흔히 '남성 성염색체'로 불리는 Y 염색체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성을 결정짓는 것은 Y 염색체 전체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Y 염색체의 짧은 암에 위치한 단 하나의 특정 유전자, 바로 SRY 유전자다.
그런데 SRY 유전자는 남성의 신체를 구축하는 정교한 청사진이 아니다. 이 유전자의 역할은 단순한 '신호 스위치'에 가깝다. 임신 7주 무렵 SRY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무분화 생식선에 "여성으로 가는 기본 경로를 차단하고 고환을 형성하라"는 일종의 화학적 비상 명령을 내린다.
이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결손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염색체 조합이 XY(남성)임에도 불구하고 SRY 유전자에 변형이 생긴 경우, 배아는 남성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궁과 난소 형태를 갖춘 완전한 여성의 신체로 발달한다. 이를 스와이어 증후군(Swyer syndrome)이라 부른다. 성염색체가 XY라 할지라도, 스위치가 켜지지 않으면 생명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원형인 '여성'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 결정에 있어서 SRY 유전자의 역할에 대한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일반적인 경우에 사람에서 실제적인 성징의 차이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Y 염색체의 존재 여부임을, 따라서 Y 염색체를 가진 사람은 모두 남성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결론으로, 드물게 발견되는 X 염색체 2개와 Y 염색체 1개를 가진 사람(XXY)이 남성임을, 그리고 하나의 X 염색체만을 가진 사람(XO)은 여성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들은 각각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 syndrome)이라는 증상을 가진 남성이며, 터너 증후군(Turner's syndrome)이라는 증상을 가진 여성이다. 이러한 증후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는 이유는, 난자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세포가 둘로 분리될 때 비분리현상(nondisjunction)이 일어나는 경우에 하나의 난자세포가 두개의 X 염색체(XX)를 갖게 되며, 다른 난자세포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하게 되는데, 이들 비정상적인 난자도 정자를 만나면 수정될 수 있고 따라서 47개 또는 45개의 염색체를 갖는 수정란이 형성되고 각각의 수정란은 성인으로의 발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XXY 염색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Y 염색체 존재 하에서는 두 X 염색체들만으로는 여성으로 발달할 수 없음을, 즉 Y 염색체의 작용으로 인해서 생식기관이 정소로 분화되기 때문에 남성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이해될 수 있다(그런데, 여분의 X 염색체로 인해 정자 형성의 미숙과 같은 정소기능부전증(testicular dysfunction) 등이 야기되기도 한다.). 또한 XX 염색체를 가진 난자가 X 염색체를 지닌 정자를 만나 형성된 수정란의 경우, 그 유전자형이 XXX가 될 것이고, 이 XXX 염색체의 소지자는 거의가 정상적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음이 이해될 수 있다. 한편, 비분리현상으로 생성된 성염색체가 없는 난자세포가 X 염색체를 지닌 정자를 만나 수정되면 그 수정란의 유전자형은 XO가 될 것인데,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의 X 염색체만을 가진 사람은 터너증후군 여성이다. 터너증후군 여성들은 X 염색체 1개만을 가지고 있지만 Y 염색체가 없기 때문에 여성으로 자라기는 하지만 보통 불임이고, 2차 성징 발달이 미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비분리현상으로 생성된 성염색체가 없는 난자세포가 Y 염색체를 지닌 정자를 만나 수정되면 그 수정란의 유전자형은 OY일 것인데, 이 경우의 수정란은 보통 배발생 단계에서 사망해서 태아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 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즉, X 염색체가 없으면 죽는 것이다.
이쯤에서 최근의 성별검사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국제적인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여성들에 대한 성별검사(gender verification test)가 실시되고 있다. 운동경기에서 성별검사가 실시된 것은 1966년 유럽육상선수권대회가 시초였는데, 여성의 인권 존중에 반한다는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폐지되었다가, 1967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다시 제기된 뒤 1968년부터 확대 실시되고 있다.
IOC는 이 성별검사를 하는 목적이 혹시 성전환을 한 남성이나 중성의 선수가, 근육이나 체력 등에 큰 이점을 지닌 채로 여자 경기종목에 참가하게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불공평을 배제하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염색체 관련 학자들이나 내분비계통의 의사들은 이러한 성별검사만으로 대상자의 선수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평한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SRY 유전자가 없거나 기능이 훼손된 돌연변이 SRY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XY 염색체를 지닌 여성, 즉 스와이어 증후군의 경우, 대부분이 안드로젠 무반응증(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 증세를 보이는데, 이러한 여성은 XX 염색체를 갖고 있는 정상적인 여성과 비교했을 때 운동선수로서의 이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안드로젠 무반응증 증세를 가진 선수의 대표적인 예가,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육상 800m에서 은메달을 땄던 인도의 순다라얀이다. 순다라얀은 경기가 끝난 후 성별 검사에 임했는데 자신이 여성 염색체(XX)가 아닌 남성 염색체(XY)를 가지고 있는 안드로겐 무반응증 환자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메달을 박탈당하게 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여자 국가대표인 세메냐는 2009년 8월 19일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여자 800m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딴 순간부터 '성 정체성'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얼굴에 난 거뭇한 털, 완벽하게 갈라진 어깨 근육 등이 의심의 표적이 되었는데, 승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그에게 성 감별 검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검사 결과, 세메냐는 '인터섹슈얼(intersexual, 중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 특성을 모두 지닌 사람이라는 뜻인데, 밖으로 드러난 남성 생식기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궁과 난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몸 속에선 일반 여성보다 3배 이상 많은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나와서 논란이 되었다. 당시 IAAF는 자체 결론을 내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5년에 슬그머니 새 규정을 발표했다. 남성호르몬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여성 운동경기 출전자를 가려내겠다는 것이었는데, "근거가 부족하고 차별의 소지가 있다"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제동을 걸어 이 규정은 효력을 잃게 되었다. 성소수자 차별 논란이 거세지자 IOC는 결국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여성으로 출전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그러면 중성 또는 양성, 왜 태어날까? 일반적으로 중성은 섹스와 젠더(gender)가 상이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XX 염색체 또는 XY 염색체의 존재 그 자체보다는, 성을 결정하는 단일유전자인 SRY 유전자가, XY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여성의 특성을 가지게끔 그리고 XX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남성의 특성을 가지게끔 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性)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섹스와 젠더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섹스는 신체의 외형에 따라 구분되는 남성 혹은 여성을 뜻하는 반면 젠더는 몸짓, 행동, 태도 등에 의해 자신이 느끼는 남성 혹은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섹스와 젠더는 일치하지만, 흔히 반음양(半陰陽)이라고 일컫는 중성은 섹스와 젠더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생식기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애매모호한 중성은 여성반음양, 남성반음양, 진성반음양으로 분류된다. 여성반음양은 염색체 검사 상으로는 정상 여성인데 외부생식기가 남성화한 경우이고 남성반음양은 염색체 검사 상으로 정상 남성이며 고환도 있지만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의 합성 및 작용의 장애로 인해서 외부생식기가 여성화한 경우이다. 반면, 진성반음양은 고환과 난소를 동시에 갖고 있거나 염색체 검사 결과 남성과 여성의 염색체를 공유하는 경우인데, 한 몸에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양성이 진성반음양에 해당한다.
그런데, 인간 이외의 다른 종들은 XX 염색체와 XY 염색체에 의한 성 결정 전략에 대해서 다양한 변이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초파리의 경우 정상 암컷은 XX이고, 정상 수컷은 XY이지만 Y 염색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X 염색체 수에 의해 최종적인 개체의 성이 결정된다. 이와 같이, 사람과 초파리에서 똑같은 비정상적인 염색체 조성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초파리와 사람의 성 결정 기작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XXY 염색체를 가진 초파리는 X 염색체가 2개이므로 암컷이지만, XXY 염색체를 가진 사람은 Y 염색체가 있기 때문에 남성이다. 대조적으로, X 염색체가 하나인 XO 염색체를 가진 초파리는 수컷이지만, Y 염색체가 없는 XO 염색체를 가진 사람은 여성이다.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 여성이고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 남성이라는 성 결정 전략 역시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방류 일부 종의 경우 암컷은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수컷은 XO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예쁜 꼬마선충(C. elegans, 선충류의 일종)에서 XO 염색체를 갖는 개체는 수컷이지만, XX 염색체를 갖는 개체는 암컷이 아니고, 난자와 정자를 모두 생성할 수 있는 자웅동체이다. 조류와 나비류의 경우, 수컷은 같은 성염색체 쌍을 가지고 있지만, 암컷은 일치되지 않는 성염색체 쌍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종들에서 성염색체를 수컷은 ZZ, 암컷은 ZW로 표시한다. 꿀벌과 장수말벌은 또 다른 복잡한 성 결정의 변이를 보여준다. 이 경우에 암컷은 이배체(diploid)이고 수컷은 반수체(haploid)이다. 두 성의 염색체들이 서로 동일하지만, 온도변이와 같은 환경변화 등에 의해 성이 결정되는 종들도 있다. 도마뱀과 악어의 경우에는 차가운 온도에서는 암컷으로, 따뜻한 온도에서는 수컷으로 결정되고, 육상거북과 바다거북은, 반대로, 따뜻한 온도에서는 암컷으로, 차가운 온도에서는 수컷으로 결정된다. 아네모네 물고기의 경우에는 나이가 듦에 따라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이 전환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암수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인가?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 생물학 부문 2017년 수상자인 요시자와 가즈노리(吉澤和徳) 일본 홋카이도대학 교수의 "세계 첫 암수 생식기 역전 생물 발견"이 신체의 외형에 따라 암수를 구분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주제 등과 관련해서 세계 여러 나라 과학자의 논문에 잇따라 인용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요시자와는 자신의 발견이 암수의 구분에 관한 기존의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수컷의 생식기는 수컷의 것이라고 쓰여있는 전 세계의 사전은 모두 시대에 뒤처지게 됐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요시자와 연구팀이 보고한 암수역전 곤충은 브라질의 동굴 속에서 발견한 다듬이벌레인데, 암컷이 다른 종의 수컷이 가지는 외형의 생식기를, 수컷의 경우엔 그 반대의 생식기를 갖고 있어서 암수역전이 확인된 첫 사례로 보고되었다. 곤충은 보통 수컷이 암컷의 위에 올라타고 교미를 하는데, 브라질의 동굴에서 발견된 이 다듬이벌레는 생식기를 상대의 몸속에 넣는 쪽이 암컷, 그걸 받아들이는 쪽이 수컷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의 사고실험을 해 볼까한다. 남성이 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까?
최근 들어서 클론 기술 개발 연구와 ‘iPS 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 유도 또는 역분화 만능줄기세포) 등과 같은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줄기세포 등을 이용해서 특정 세포로 분화(differentiation)시키는 연구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가능하지 않지만, 향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암컷(또는 여성)의 줄기세포(또는 유도된 줄기세포)를 인위적으로 감수분열이 일어나게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정자로 분화되게끔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렇게 해서 얻어진 X 염색체만 가지고 있는 정자를 암컷(또는 여성)의 난자와 체외수정을 시켜 수정란을 얻고 그 후 암컷(또는 여성)의 자궁에 착상을 시킨다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1996년에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로 복제양 돌리(Dolly)가 태어났던 것처럼, 이 경우에도 수컷(또는 남성)의 정자가 전혀 필요치 않았다. 수컷(또는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까?
반면에, 수컷(또는 남성)의 줄기세포(또는 유도된 줄기세포)를 인위적으로 감수분열이 일어나게, 그리고 난자(egg)로 분화되게 한 경우는 조금 다르다. 즉, 얻어진 난자는 X 또는 Y 염색체만 가지고 있을 것인데, Y 염색체를 가지는 난자는 우리가 아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생리적 특성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Y 염색체를 가지는 난자가 생존 능력이나 수정 능력 등이 없다면, X 염색체만 가지는 난자를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X 염색체만 가지는 난자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수컷(또는 남성)의 정자와 체외수정하여 얻을 수 있는 수정란은 XY 염색체 또는 XX 염색체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Y 염색체를 가지는 정자를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만, XY 염색체를 가지는 수정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XY 염색체를 가지는 수정란을 태아로 키우기 위해서는 암컷(또는 여성)의 자궁 또는 인공 자궁이 반드시 필요하다. 암컷(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2018년에 암컷끼리 또는 수컷끼리 생식세포를 결합해 건강한 새끼를 태어나게 하는 쥐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포유류에서 단성생식이 성공한 사례로는 처음이었는데, 일부 새끼 쥐는 성체로 자라 정상적으로 번식까지 했다고 한다. 동성의 부모로부터 인위적으로 자손이 태어나게 할 수 있음을 보인 연구인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많은 관련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중국과학원 동물학연구소 줄기세포 생식생물학 국가중점실험실 연구팀은 일반적인 포유류에 비해 DNA를 반만 지닌 일종의 ‘반쪽’ 생식세포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렇게 만든 암컷 또는 수컷 쥐의 반수체 배아줄기세포를 준비한 뒤, 각각의 생식세포에서 부모한테 받은 유전자 중 어떤 유전자를 발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각인유전자’(예를 들어 키가 큰 엄마와 작은 아빠가 있다면 키를 크게 하거나 작게 하는 유전자가 자식에게 다 있을 수 있지만, 이 가운데 누구의 유전자가 작동할 것인지는 바로 이 각인유전자의 결정에 달렸다고 한다.)를 인위적으로 없앤 후, 암컷 쥐 반수체 배아줄기세포를 두 개 준비하고 이를 대리모 쥐의 난자에 주입했다. 그 결과 210개의 배아에서 모두 29마리의 건강한 쥐(암컷의 X 염색체만 받았기 때문에 암컷만 생긴다.)가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들 2세대가 정상적으로 자라서 다시 새끼(3세대)도 낳을 수 있음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비슷한 방법으로 수컷에서도 단성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제 몇 가지를 덧붙여 글을 마무리할 때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발생학적 관점에서 남성의 탄생은 기본 경로(여성)를 바꾸기 위한 치열한 '능동적 개입'의 결과물이다. SRY 유전자에 의해 고환이 형성되면, 고환은 즉시 두 가지 핵심 물질을 분비해야 한다. 첫째는 남성 생식기를 형성하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고, 둘째는 여성 생식기 유래 조직인 뮐러관의 발달을 강제로 파괴하는 항뮐러관 호르몬(AMH, Anti-Müllerian Hormone)이다.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남성 호르몬을 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에 자연스럽게 자라나려 하는 여성형 신체 기관을 '억제'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동시에 수행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드로겐 불응성 증후군(AIS)은 '여성이 기본값'이라는 명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의학적 사례다. XY 염색체를 가지고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더라도, 신체 세포가 이 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에 이상이 생기면 테스토스테론은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신체는 남성 호르몬 신호를 무시한 채 본래의 디폴트 체계에 따라 완벽한 여성의 외음부, 가슴, 신체 라인을 형성하며 자란다. 남성 호르몬이라는 강제적인 변경 신호가 세포에 전달되지 않으면, 인간의 몸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형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성염색체의 구조와 진화의 역사 역시 '여성 디폴트론'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핵심 유전자는 대부분 X 염색체에 집중되어 있다. X 염색체는 1,000개 이상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거대하고 안정적인 염색체로, 뇌 발달, 면역 체계, 기본 대사 과정 등 인간의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정보들을 집대성하고 있다. 그래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최소한 하나 이상의 X 염색체를 가지지 못하면 생명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YO 조합은 배아 단계에서 즉시 사멸한다).
반면 Y 염색체는 길이가 X 염색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보유한 유전자도 50~60개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유전자들의 대부분은 정자 형성이나 남성 생식선 분화에만 특화되어 있다. 생물학적으로 Y 염색체는 독립적인 생명 청사진이라기보다, X 염색체라는 거대한 생명 기본 틀 위에 '남성적 특성'을 덧붙이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뒤늦게 추가된 첨가물에 가깝다.
"인간의 디폴트는 여자다"라는 과학적 사실은 단순한 페미니즘적 구호나 선언이 아니다. 이는 엄밀한 발생학적, 유전학적 메커니즘이 입증하는 자연의 질서다.
인간이라는 종(Species)의 가장 안정적이고 기초적인 신체적 표준은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남성이라는 성별은 이 여성적 기본 바탕 위에 SRY 유전자라는 스위치가 켜지고, 호르몬을 통한 강력한 가공과 억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변형된 형태'다.
'디폴트가 여자'라는 명제는 단순한 발생학적 사실을 넘어 여러 학문적 함의를 갖는다. 진화생물학적으로는 포유류의 조상 형질이 여성형에 가까웠으며, 남성형은 생식 경쟁이라는 진화적 압력 속에서 추가로 정교화된 파생 형질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발달생물학적으로 이 원리는 신체 여러 기관—외부 생식기, 유선, 신경 회로 일부—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데, 이는 남성형 발달이 '기본 배선을 능동적으로 억제하고 재구성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시사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남성 중심적 생물학관—여성을 남성의 미완성형으로 보던 오만—을 완전히 해체하는 일이다. 생명의 본질은 여성이라는 굳건한 바탕 위에 서 있으며, 남성은 그 바탕 위에서 피어난 다양성의 한 갈래일 뿐이다. 과학은 비로소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의 첫 페이지에 기록된 이름은 언제나 '여성'이었다고.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는 주장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인간의 디폴트는 여자다’라는 명제는 발생학적·해부학적 층위의 설명이지, 사회문화적 성별 정체성이나 심리적 젠더에 대한 결론으로 확대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생물학적 기본값과 인간의 정체성·행동은 별개의 층위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이며, 이를 혼동할 경우 과도한 환원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