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걱정이다!
by 600612
과학이 걱정된다.
이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싫어하느냐고 묻는다. 과학이 인류를 지금의 번영으로 이끈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우리는 과학 덕분에 이전 시대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요를 누리고 있다.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났고,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감소했으며, 정보는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된다. 우리는 전등 아래에서 밤을 낮처럼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하루 만에 대륙을 넘나들며,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지식을 손안에 담고 산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이 걱정된다.
물론 과학 자체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며, 진실을 향한 가장 강력한 탐구 방법 중 하나다. 문제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을 다루는 인간이다.
칼은 빵을 자를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전기는 병원을 움직일 수도 있고 전기의자에 사용될 수도 있다. 과학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하지만 과학이 만들어 내는 힘은 인간의 삶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과학이 걱정된다.
과학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하기 때문에 걱정된다.
인류의 역사 대부분은 생존의 역사였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에 시달렸다. 작은 감염 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고, 흉년이 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일도 흔했다.
그러나 과학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었다.
백신은 천연두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항생제는 수많은 감염병을 치료할 수 있게 했다. 농업 과학은 식량 생산량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현대 의학은 암과 심장병 같은 질환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곤 한다.
깨끗한 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겨울에도 따뜻한 방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먼 거리의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말이다.
과학은 인간의 삶을 분명히 더 좋게 만들었다.
덕분에 인간은 자연의 무력한 희생자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존재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과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성공은 새로운 문제를 가져온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새로운 위험이 있다.
오늘날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는 발전의 속도다.
기술은 너무 빨리 변한다.
과거에는 한 세대가 살아가는 동안 생활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삶이 비슷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야말로 한국 발전 과도기의 상징이라고, 자신이야말로 한국 발전의 산증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챗봇도 없었다. 소셜미디어도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적응 속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몇 년 만에 세상을 바꾸지만 법과 제도는 수십 년이 걸려 변한다. 윤리는 그보다 더 느리다. 인간의 가치관은 기술보다 훨씬 천천히 움직인다.
그 결과 사회는 언제나 뒤쫓는 입장이 된다.
문제가 터진 뒤에야 대책을 고민한다.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된 뒤에 보안 정책을 만든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논란이 된 뒤에 규제를 논의한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진 뒤에 탄소 배출 감소를 외친다.
기술은 미래로 달려가고 있는데 인간 사회는 과거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이 간격이 점점 커질수록 걱정도 커진다.
최근 과학기술 가운데 가장 큰 불안의 대상은 단연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놀랍다.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음악을 만든다.
프로그래밍을 한다.
번역을 한다.
심지어 사람과 대화도 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실제로 일부 직업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는 물론이고 전문직 영역마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일자리 감소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인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만약 기계가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기계가 인간보다 더 잘 기억한다면 기억의 가치는 무엇일까?
만약 기계가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간의 존재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철학 문제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 왔다. 의사, 교사, 기자, 연구자,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과학은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과학은 많은 경우 무엇이 가능한지 알려 줄 뿐이다.
무엇이 바람직한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또 다른 걱정을 안겨 준다.
과거에는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적으로 그것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
질병을 예방하는 유전자 치료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유전적 질환으로 평생 고통받을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질병 예방을 넘어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키를 크게 만들 수 있다면?
지능을 높일 수 있다면?
운동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떤 부모는 그러한 기술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유전자 향상을 받을 수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가 등장할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하게 설계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과연 공정할까?
과학은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정의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점이 걱정스럽다.
기술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우리는 어디를 갔는지 기록된다.
무엇을 검색했는지 기록된다.
무엇을 구매했는지 기록된다.
누구와 연락했는지 기록된다.
심지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기록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추천 서비스는 더 정확해지고, 검색은 더 쉬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한 감시 체계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편리함과 자유를 교환한다는 점이다.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한다.
서비스가 편리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넘겨준다.
어느 순간 우리는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기술이 인간을 더 투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투명해지는 만큼 통제도 쉬워진다.
과학이 만든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기후 위기일지 모른다.
물론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엄청난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량의 화석연료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석탄과 석유는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기후 위기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과학적 발전이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과학이 그 문제를 발견했다.
또한 과학이 해결책을 찾고 있다.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수소 에너지, 탄소 포집 기술 등 다양한 대안이 연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리함을 원한다.
빠른 이동을 원한다.
더 많은 소비를 원한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원한다.
기후 위기는 결국 인간 문명의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래서 더욱 걱정된다.
과학기술은 교육도 변화시키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수많은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있다.
예전처럼 도서관에서 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것은 검색하면 된다.
문제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고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보를 너무 쉽게 얻다 보니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
학생들은 답은 빨리 찾지만 질문은 잘 만들지 못한다.
정보는 많지만 이해는 부족하다.
지식은 많지만 통찰은 적다.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과학이 제공한 정보 혁명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교육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
지식을 암기하는 능력보다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과학은 매우 강력한 도구지만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
사랑이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과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과학은 인간의 심장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의미를 정의할 수는 없다.
과학은 뇌의 활동의 일부분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문학과 철학도 중요해진다.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과학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과학 그 자체는 걱정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할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인류는 핵분열을 발견했다. 그 결과 원자력 발전소도 만들었고 핵폭탄도 만들었다.
인터넷을 개발했다. 그 결과 지식의 공유도 가능해졌고 가짜뉴스의 확산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 결과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고 인간을 통제할 수도 있게 되었다.
결국 기술은 거울과 같다.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이 비친다.
과학의 발전이 두려운 이유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생명공학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우주 개발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것이다.
인류는 앞으로도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낼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과학의 힘이 커질수록 인간의 책임도 커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방향을 정해 주지 않는다.
속도만 높여 줄 뿐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달린다면 더 빨리 파멸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학이 걱정된다.
하지만 과학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과학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과학은 미래를 만든다.
그러나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과학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과학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 강력한 힘을 다루기에 인간이 아직 충분히 현명한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과학,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