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후위기
by ssh
과학은 경고하고, 세계는 주저한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아니고 기후위기(climate crisis)이다. 기후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기력하게 대응이 지연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보고서는 수천 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수만 편의 논문을 종합하며, 각국 정부의 검토를 거쳐 완성되는 인류 최대 규모의 과학적 합의 문서다. 그런데도 이 압도적인 과학적 확실성은 정치적 지연,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대중의 심리적 저항 앞에서 번번이 무력화된다. 과학이 아무리 정확하게 경고해도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과학은 무슨 소용인가.
이번 글에서는 기후과학 등 과학이 쌓아온 확실성의 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기후위기에 대한 회의론과 왜곡, 기후모델의 불확실성을 악용하는 정치적 수사, 탄소중립을 둘러싼 과학과 산업의 갈등, 그리고 기후 데이터 자체를 둘러싼 신뢰의 위기까지 폭넓게 짚어보고자 한다.
1. 압도적 합의, 그러나 흔들리는 신뢰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명제는 현재 과학계 내에서 사실상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과학자라면 부인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2021년 발표된 한 메타분석 연구는 기후 관련 동료 심사 논문 88,125편을 분석한 결과,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는 논문의 비율이 99.9%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 존 쿡(John Cook) 등이 수행한 선행 연구(97.1% 동의)보다도 더 높은 수치로,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적 합의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IPCC 6차 평가보고서(AR6, 2021-2023)는 "인간의 영향이 대기, 해양, 육지를 온난화시켰다는 것은 명백하다(unequivocal)"고 명시했다. 이는 이전 보고서들이 사용했던 "매우 높은 신뢰도(very high confidence)"나 "extremely likely(극히 개연성 높음)" 같은 표현보다 한층 강화된 단정적 언어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약 1.1~1.2도 상승했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4년 기준 420 ppm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상승은 지난 80만 년의 지구 역사를 통틀어 전례 없는 수준이며, 그 상승 속도 또한 자연적 변동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은 이와 같은 과학계의 압도적 합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대중이 인식하는 '(기후)과학자 사이의 합의 수준'은 실제(99% 이상)보다 훨씬 낮게(많게는 60~70%대로)추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합의 격차(consensus gap)'는 우연이 아니라, 바로 이어서 살펴볼 조직적인 회의론 확산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2. 의심을 파는 산업: 조직화된 회의론의 계보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Naomi Oreskes)와 에릭 콘웨이(Erik Conway)는 저서 『의혹을 팝니다(Merchants of Doubt)』에서 담배 산업이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흐리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즉 "과학적 불확실성을 강조하고, 소수의 반대 의견을 가진 전문가를 내세워 '논쟁이 진행 중'이라는 인상을 만드는" 전략)이 이후 기후변화 부정론에도 그대로 이식되었음을 밝혀냈다. ‘새로운 것은 항상 기존의 것의 저항을 받으며 태어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담배 산업은 저항의 수단으로 상당히 의도적인 의혹제기를 했던 것이다. 흡연과 폐암과의 관련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의 혼란 역시, 필자가 판단하기에,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화석연료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 회의론을 조장하는 싱크탱크와 로비 단체에 투입했다. 대표적으로 엑슨모빌(ExxonMobil)의 경우, 2015년 내부 문건 폭로를 통해 이 회사가 이미 1970~80년대부터 자체 연구를 통해 화석연료 연소가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십 년간 외부적으로는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3년 하버드대 연구팀이 엑슨모빌의 내부 기후 예측 모델을 재분석한 결과, 이 회사의 1970~80년대 내부 모델이 실제 관측된 온난화 추세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했음이 확인되었다. 즉,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대중에게는 의심을 팔았다.
이러한 조직적 회의론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네 가지 정도의 반복되는 전술을 사용한다.
첫째, "과학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the science isn't settled)."고 주장하는 전술이다. 기후모델의 세부적인 불확실성(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강수량 변화 예측 정밀도)을 마치 기후변화 자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인 것처럼 과장하는 수사(修辭)다. 과학에서 모든 세부 사항이 100% 확정되는 경우는 없다는 점을 악용해, 정상적인 과학적 불확실성과 근본 명제에 대한 의심을 의도적으로 혼동시킨다. 이번 주 로또 당첨 번호가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특정한 당첨 번호가 확정될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둘째, "지구는 항상 변해왔다(climate has always changed)." 고 주장하는 전술이다.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 지구 기후가 자연적으로 변동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변화 속도가 그 어떤 자연적 변동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누락한다. 홀로세(Holocene) 동안 지구 평균기온의 자연적 변동은 수천 년에 걸쳐 1~2도 수준이었던 반면, 현재는 불과 100여 년 만에 1.2도가 상승했다.
셋째, "소수 의견의 과잉 대표"라고 주장하는 전술이다. 언론이 '균형 보도'라는 명목 아래 99%의 과학적 합의와 1%의 반대 의견을 마치 50 대 50인 것처럼 병렬 배치하는 '거짓 균형(false balance)' 관행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는 기후 저널리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어온 문제로,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미국 주요 언론에서 두드러졌다.
넷째, 기후과학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소송전을 이용하는 전술이다. 대표적으로 하키스틱 그래프(과거 1천 년간의 기온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로, 급격한 최근 상승을 시각적으로 보여줌)를 처음 제시한 마이클 만(Michael Mann) 교수는 수십 년간 조직적인 명예훼손과 소송, 심지어 이메일 해킹(이른바 2009년의 'Climategate' 사건)의 표적이 되어왔다. 2009년 유출된 이메일 일부 문구가 맥락을 벗어나 편집되어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식으로 유포되었으나, 이후 최소 8건의 독립적인 조사(영국 의회, 미국 국립과학원 등)에서 과학적 부정행위는 없었다는 결론이 반복적으로 내려졌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의론자들에 의해 "기후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반복 소환되며 대중의 불신을 재생산하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할텐데 손가락 끝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다.
3. 기후모델의 불확실성: 정직한 겸손인가, 공격의 빌미인가
기후위기에 대한 회의론자의 4 가지 전술 중에서 첫 번째 전술과도 관련이 있는 기후모델의 불활실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기후과학이 안고 있는 역설 중 하나는, 과학적 정직성의 표현인 '불확실성 명시'가 오히려 회의론자들의 추가적인 공격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IPCC 보고서는 각 진술마다 신뢰도 수준(예를 들어, "likely", "very likely", "medium confidence" 등)을 명시하는데, 이는 과학적 엄밀성을 보여주는 장치이지만, 동시에 "그것 봐라, 과학자들도 확신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식의 왜곡된 인용에 이용되곤 한다.
기후모델 자체의 한계가 실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구 시스템은 대기, 해양, 빙하, 생태계, 탄소 순환이 복잡하게 얽힌 초거대 비선형 시스템(no-linear system)이며, 이를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현재의 컴퓨팅 능력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구름 형성과 피드백 효과(온난화가 구름의 종류와 분포를 어떻게 바꾸고, 그것이 다시 온난화를 가속하거나 완화하는 정도)는 기후모델 간에도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대표적인 불확실성 영역이다. 기후 민감도(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로 증가했을 때 예상되는 평균기온 상승폭)에 대한 추정치는 여러 세대의 IPCC 보고서를 거치며 좁혀지긴 했으나, 여전히 2.5도에서 4도 사이라는 범위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적 불확실성이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근본 명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기후모델의 예측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상당히 정확했다는 점이다. 2019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된 연구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표된 17개의 기후모델을 검증한 결과, 그중 14개가 실제 관측된 온난화 추세를 정확하게 예측했음을 확인했다. 이는 기후모델이 "불확실하니 믿을 수 없다"는 통념과 달리, 핵심적인 장기 추세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신뢰할 만한 예측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검증된 신뢰성'이라는 사실보다, "모델은 어차피 틀릴 수 있다"는 대중적 직관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적 난제를 드러낸다. 확률과 신뢰구간이라는 언어로 말하는 과학과, 확정적 서사를 원하는 대중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4. 티핑 포인트와 재앙적 서사의 딜레마
기후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마주한 또 다른 딜레마는 기후위기에 대해 '얼마나 절박하게 말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기후 시스템에는 일정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으면 되돌릴 수 없는 급격한 변화가 촉발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린란드 및 남극 서부 빙상의 붕괴, 네팔의 빙하 붕괴 홍수, 아마존 열대우림의 사바나화, 대서양 자오면 순환(AMOC)의 붕괴, 영구동토층의 대규모 해빙과 메탄 방출 등이 대표적이다.). 2022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지구가 이미 일부 티핑 포인트에 근접했거나 이미 넘어섰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16개의 주요 티핑 요소 중 최소 5개가 현재의 온난화 수준(약 1.2도)에서도 촉발될 위험 구간에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티핑 포인트'에 대한 강조 또는 서사는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고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종말론적인 프레이밍이 오히려 '기후 절망(climate doom)'이나 무력감을 낳아 행동을 마비시킬 위험도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공포를 자극하는 메시지에 의한 공포 조장은 단기적으로는 주의를 끌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 방안과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오히려 회피와 부정(denial)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기후 불안(climate anxiety 또는 eco-anxiety)' 현상은 이러한 딜레마의 사회적 증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란셋(Lancet)이 10개국 1만 명의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5% 이상이 "미래가 두렵다"고 답했고, 45%는 기후 불안이 일상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과학자들 스스로도 이와 같은 기후위기에 대한 서사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상당한 긴장을 겪고 있다. 지나치게 신중한 언어는 정치적 지연의 빌미를 제공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공포를 조장하는 언어는 냉소와 무력감을 낳거나 "과학자들이 과장한다"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이 딜레마는 기후과학이 순수한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 커뮤니케이션학·심리학·정치학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5. 탄소중립 계산의 함정: 그린워싱과 통계적 눈속임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한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또는 '넷제로(net-zero)'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과학적·통계적 논쟁의 대상이다. 많은 기업과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지만, 그 이행 방식을 들여다보면 실질적 감축보다 회계적 상쇄(offset)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탄소 상쇄 시장, 특히 산림 보호를 통한 탄소 크레딧(REDD+ 등)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2023년 가디언(The Guardian)과 여러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는 세계 최대 탄소 인증기관인 베라(Verra)가 발급한 열대우림 보호 관련 탄소 크레딧의 90% 이상이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가 거의 없거나 "허상(phantom credit)"에 가깝다고 폭로했다. 이는 기업들이 실제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값싼 크레딧 구매만으로 "탄소중립"을 표방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 허점이다.
또한 '순배출량(net emissions)' 계산 방식 자체도 논쟁적이다. 항공사나 정유회사들이 발표하는 탄소중립 목표는 종종 스코프 1(scope 1, 직접 배출)과 스코프 2(scope 2, 간접 배출인 전력 사용)만을 포함하고, 실제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코프 3(scope 3, 공급망 및 제품 사용 단계의 배출, 예컨대 판매된 석유가 최종적으로 연소될 때 발생하는 배출)를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의 선택적 회계는 통계적으로는 '합법적'이지만 실질적인 감축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을 '탄소중립' 에너지로 분류하는 관행 역시 과학계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거리다. 나무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탄소중립으로 간주되는 근거는 "나무가 자라면서 다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논리인데, 문제는 벌목된 나무가 새로 자라 동일한 양의 탄소를 재흡수하기까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사이 대기 중에 방출된 탄소는 당장의 기후위기 대응 시간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탄소 회계의 시간적 착시'는 여러 저명한 생태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온 지점이다.
6. 기후 데이터를 둘러싼 신뢰 전쟁
기후과학의 신뢰성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축은 관측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 문제다. 과학의 특성이자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측정과 그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그리고 재현성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지구 평균기온 데이터는 전 세계 수천 개의 지상 관측소, 해양 부이, 위성 관측 자료를 종합해 산출되는데, 회의론자들은 종종 "도시화로 인한 열섬 효과가 관측소 데이터를 왜곡시킨다"거나 "관측소 위치 변경, 장비 교체 등으로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이에 대응해 2010년, 원래 기후변화에 회의적이었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가 이끄는 독립 연구팀 '버클리 지구(Berkeley Earth)'가 코흐 형제(Koch brothers)의 화석연료 산업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자금 후원을 받아 완전히 독립적으로 전 세계 기온 데이터를 처음부터 재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설계된 이 프로젝트는 아이러니하게도 NASA, NOAA 등 기존 기관들의 기온 상승 추세 분석 결과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결론에 도달했고, 뮬러 본인도 이후 "데이터는 명확하며, 지구온난화는 실재하고 인간이 원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전환했다. 이는 독립적이고 회의적인 검증조차 기존 결론을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 기후과학의 방법론적 견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위성 관측 데이터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1990년대 위성 기반 대류권 온도 측정치가 지상 관측 데이터와 다소 어긋나는 결과를 보이면서 회의론의 근거로 활용된 적이 있었으나, 이후 위성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의 오류(궤도 이동에 따른 보정 오류 등)가 발견되어 수정되었고, 수정된 데이터는 지상 관측 및 기후모델 예측과 훨씬 잘 일치하게 되었다. 이 사례 역시 과학적 자기 교정 과정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이지만, 최초의 '불일치' 자체는 여전히 일부 회의론 진영에서 선택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7. 기후과학과 정책 사이의 간극
과학적 합의가 정책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과 기후위기’의 핵심적 아이러니다. 1992년 리우 기후변화협약 채택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60% 이상 증가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195개국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또는 2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지만, 2024년 현재 각국이 제출한 국가결정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모두 이행하더라도 금세기 말 기온 상승은 2.5~2.9도에 이를 것으로 UN환경계획(UNEP)은 경고하고 있다.
이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화석연료 산업의 정치적 로비력, 단기적 경제성장과 장기적 환경 비용 사이의 시간 불일치,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갈등(‘누가 역사적 책임을 지고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를 의미하는데, 많은 환경 문제의 경우, 원인의 제공자, 그 결과의 피해자, 그리고 비용 부담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 해결 방법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에 따른 고용 및 지역경제 충격에 대한 정치적 두려움 등이 모두 얽혀 있다. 여기에 더해,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 안보나 팬데믹처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후변화는 느리고, 누적적이며, 그 피해가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직관적 위험 인지 체계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기후위기가 "먼 미래", "먼 지역", "먼 존재(북극곰 등)"의 문제로 인식될수록 개인의 행동 변화 동기는 약해진다. ‘왜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과학자들 역시 이러한 정책 지연에 좌절감을 표현해왔다. 2021년, 저명 과학자 그룹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등을 통해 "우리는 이미 모든 필요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은 정치적 의지다"라는 취지의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일부 기후과학자들은 극단적인 좌절감 속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Extinction Rebellion 등)에 직접 뛰어들거나, 자신의 연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공개적 항의로 학술대회에서 발언하는 등, 전통적인 '중립적 과학자' 역할을 넘어서는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도 "객관적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적극적 옹호자가 될 것인가"라는 역할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8. 지오엔지니어링: 새로운 불확실성의 지대
기후위기 대응이 지연되면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지구공학(geoengineering)', 특히 태양복사관리(Solar Radiation Management, SRM) 기술이다. 성층권에 미세한 에어로졸을 살포해 태양광을 일부 반사시킴으로써 지구를 인위적으로 냉각시키자는 이 아이디어는 대형 화산 폭발 이후 관측되는 일시적 기온 하강 현상(예: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후 약 1~2년간 전지구 평균기온이 0.5도가량 하강했던 사례)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과학계 내부에서도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다. 지지자들은 "기존의 감축 노력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므로, 최후의 수단으로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판자들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첫째, SRM은 온실가스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일시적으로 가리는 것에 불과해, 살포를 중단하는 순간 억눌려 있던 온난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시 나타나는 '종료 충격(termination shock)' 위험이 있다. 둘째, 지역별로 강수 패턴과 몬순 시스템에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의 농업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에 불균등한 피해를 줄 위험이 있다. 셋째, 이 기술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단일 국가나 심지어 부유한 개인도 실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누가 이를 결정하고 통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거버넌스 공백 문제(이른바 '기후 무단행동(rogue geoengineering)'의 위험)를 안고 있다.
2023년,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승인 없이 멕시코 상공에서 소규모 SRM 실험을 강행한 사건은 이러한 거버넌스 공백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위협임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응해 멕시코 정부는 자국 영공에서의 지구공학 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기술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과학과 기후위기'와 관련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기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그 통제되지 않은 확산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의 원천이 되는 역설).
9. 기후 저널리즘과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와 진화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바와 같이, 기후위기가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데에는 언론과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적 한계도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언급되었던 '거짓 균형' 문제 외에도, 기후 보도는 종종 개별적이고 극적인 재난(폭염, 산불, 홍수 등)에 집중하면서 그 근본 원인인 장기적 구조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 번의 사건'과 '기후 추세'를 혼동하게 만들어,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냐"는 식의 오해를 반복적으로 낳는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후 귀속 과학(climate attribution science)'이라는 분야가 발전하면서 이런 혼동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분야는 특정 극한기후 사건(폭염, 태풍, 가뭄 등)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 확률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통계적으로 정량화하는 기법이다. 예컨대 world weather attribution 이니셔티브는 2021년 발생한 북미 서부의 기록적 폭염(캐나다 리튼 마을에서 49.6도 기록)에 대해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이런 폭염이 발생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으며,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이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 150배 높였다"는 분석을 신속하게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신속 귀속 분석(rapid attribution analysis)은 추상적이던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를 개별 사건과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대중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또한 기존의 '정보 결핍 모델(deficit model, 즉 "대중이 과학 정보를 몰라서 기후위기를 안 믿는다"는 전제)'이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 신뢰하는 정보원, 그리고 기존 세계관과의 부합 여부가 기후변화 수용도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지역사회에 신뢰받는 메신저(종교 지도자, 농민, 보수 성향의 군 출신 인사 등)를 활용하거나, 경제적 기회(일자리, 에너지 절감)와 연결 지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10. 그럼에도 나아가는 과학: 희망의 근거들
이 모든 걱정에도 불구하고, 기후과학과 그 응용 기술의 발전은 분명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짚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기술의 비용은 지난 10여 년간 극적으로 하락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단가는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약 85% 하락했으며, 이는 시장 논리만으로도 화석연료 대비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 요인이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전기차 보급 확대, 그린수소 기술의 상용화 시도 등도 기후과학이 제시한 경고에 대한 실질적 응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후모델의 정밀도 자체도 계속 향상되고 있다. 고해상도 지역 기후모델,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후 시뮬레이션(구글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 등)은 기존 물리 기반 모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때로는 더 높은 정확도로 극한기후를 예측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앞서 다룬 '모델 불확실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좁혀가는 방향으로 과학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 협력의 틀 역시, 비록 더디지만, 완전히 정체된 것은 아니다. 파리협정 이후 처음으로 2023년 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s)"이라는 문구가 사상 최초로 최종 합의문에 명시되었다. 이는 여전히 구속력 없는 선언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지만, 30년 가까이 화석연료를 직접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왔던 국제 기후협상의 역사를 감안하면 상징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걱정을 동력으로
기후위기를 둘러싼 '과학의 걱정'은 과학의 또다른 걱정거리라고 할 수 있는 재현성 위기나 p-해킹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과학의 걱정'은 과학 방법론 내부의 결함에서 비롯된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리만치 확고한 과학적 결론이 사회적·정치적 관성 앞에서 무력화되는 데서 오는 걱정이다. 담배 산업의 전략을 빌려온 조직적 회의론, 불확실성을 가장한 정치적 지연, 회계적 눈속임으로 전락한 탄소중립,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지구공학이라는 위험한 도박까지, 이 모든 것은 과학이 틀려서가 아니라, 과학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 옳음이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과학의 걱정’이다. 걱정은 정직한 진단이지 사망 선고가 아니다. 그리고 정직한 진단이야말로, 아직 늦지 않은 처방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