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권력과 바이오 제약 자본주의: 살릴 수 있으나 죽어가는 이들
by ㅅㅅ
존재하는 약, 닿을 수 없는 약
인류는 에이즈를, C형 간염을, 여러 종류의 암을 치료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약을 이미 발명했다. 과학은 이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매년 수백만 명이 이미 존재하는 치료법에 접근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접근의 실패이며, 그 실패의 핵심 기제 중 하나가 바로 특허 제도다. 특허는 본래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제도였지만, 오늘날 제약 산업에서 특허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지식을 가장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는 장벽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글에서는 특허 권력이 실제로 생명을 좌우해온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과학의 성과가 자본의 논리 안에서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살펴본다.
1. AZT에서 에이즈 치료제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쟁
1990년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HIV/AIDS로 인해 매년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재앙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미 서구에서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ART)가 개발되어 HIV 감염을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이 약들의 연간 치료비는 개당 1만~1만 5천 달러에 달했고, 이는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GDP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1997년 의약품법을 개정해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도 값싼 복제약(제네릭)을 수입하거나 병행수입할 수 있는 강제실시권 관련 조항을 도입했는데, 이에 대해 39개 글로벌 제약회사 컨소시엄이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국제 시민사회와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2001년 제약회사들은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이 소송이 진행된 3년 동안 수백만 명이 치료에 접근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는 사실은 특허 권력이 실제로 인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남았다.
이 사건은 이후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 선언'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각국이 특허권보다 공중보건을 우선할 수 있다는 원칙, 즉 TRIPS 협정 내 강제실시권 발동의 유연성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 선언 이후에도 실제 강제실시권 발동은 정치적·외교적 압력 속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져 왔으며, 원칙의 선언과 현실의 집행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2.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 완치약과 가격의 역설
2013년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가 출시한 소발디(Sovaldi, 성분명 소포스부비르)는 C형 간염을 90% 이상의 완치율로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약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12주 치료 과정에 미국에서 약 8만 4천 달러, 하루에 알약 하나당 1천 달러라는 가격이 책정되었다. 길리어드는 이 가격이 장기적으로 간경화나 간암, 간 이식으로 이어질 경우 발생하는 훨씬 큰 의료비용을 예방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의 2015년 조사 보고서는 이 가격이 실제 연구개발비와는 무관하게 순전히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기준으로 책정되었다는 내부 문건을 근거로 이 가격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약이 국가별로 극단적으로 다른 가격에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에서는 강제실시권 압박과 제네릭 생산 허용을 통해 동일한 치료 과정이 약 900달러 수준까지 낮아졌다. 이는 약의 실제 생산 비용이 가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순수하게 특허가 보장하는 시장 독점력에서 비롯된 이윤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 사례는 신약의 가격이 개발 비용의 회수라는 논리보다 시장별 지불 능력에 따른 차별적 가격 책정(price discrimination)의 논리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로 인용된다.
3. 인슐린: 100년 전 무료로 공개된 발견이 오늘날의 위기가 되다
인슐린의 역사는 특허 권력의 역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21년 인슐린을 발견한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Banting)과 그의 동료들은 이 발견의 특허를 토론토 대학에 단 1달러에 양도했다. 밴팅은 "인슐린은 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생명을 구하는 발견에 대해 발명자가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의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가격이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해 일부 환자들이 비용 문제로 인슐린 투여량을 스스로 줄이거나 건너뛰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인슐린 자체의 특허가 아니라, 제약회사들이 기존 인슐린 제형에 미세한 개량(delivery device, 흡수 속도 조절 등)을 더해 새로운 특허를 계속 취득함으로써 독점을 연장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의 결과다. 최근 미국 정부와 여러 주 정부의 압박, 그리고 3대 인슐린 제조사(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사노피)의 자발적 가격 인하 발표(2023~2024년)로 상황이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이는 100년 전 밴팅이 상상했던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슐린'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현실이다.
4. 코로나19 백신: 팬데믹 속에서도 지켜진 지식재산권
코로나19 팬데믹은 특허 권력의 문제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다시 드러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은 놀라운 속도로 개발되었지만, 그 기저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공공 연구비 지원(미국 국립보건원 등)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2020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세계무역기구에 코로나19 관련 백신과 치료제에 대해 TRIPS 협정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임시로 면제해줄 것을 제안했으나, 이 제안은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 주요 선진국과 제약업계의 강한 반대에 부딩혀 거의 2년간 표류했다. 그 결과 2021년 한 해 동안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선진국의 몇십 분의 1에 불과한 수준에 머물렀고, 이 접근 불평등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확산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다수 제기되었다. 결국 2022년 WTO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의 지식재산권 면제 합의에 도달했지만, 이미 팬데믹의 가장 치명적인 시기는 지나간 뒤였다.
5. 특허 절벽과 '생물학적 제제' 특유의 장벽
일반 화학 합성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되면 비교적 손쉽게 제네릭 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해 가격이 대폭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항체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 같은 생물학적 제제(biologics)는 그 구조가 훨씬 복잡하여, 특허가 만료되어도 완전히 동일한 복제약이 아니라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라는 유사 제품만 만들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임상적으로 동등한 효과를 인정받기 위한 별도의 규제 승인 절차가 필요하고, 그 개발 비용 자체도 일반 제네릭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특허가 만료된 이후에도 가격 하락의 폭과 속도가 제한적이다. 이는 최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항체 기반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특허 만료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약가가 유지되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
6. 대안의 실험들: 특허를 넘어서려는 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응해 여러 대안적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의약품특허풀(Medicines Patent Pool, MPP)은 여러 제약회사로부터 자발적 라이선스를 확보해 저소득국 제네릭 제조사들이 로열티를 지불하고 특정 필수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국제기구로, HIV·결핵·C형 간염 치료제 분야에서 실질적인 접근성 개선 성과를 거두어왔다. 또한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는 '의약품 개발의 공공재화'를 주장하며, 공공 자금이 상당 부분 투입된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최종 제품 가격에 사회적 책임 조항을 부과하거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보다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절차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약가 협상 제도, 그리고 유럽 다수 국가의 참조가격제(reference pricing)는 특허 독점권을 유지하면서도 그 가격 남용을 국가가 집단적으로 견제하는 절충적 모델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미국처럼 정부의 가격 개입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결국 미국 소비자들이 전 세계 제약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실질적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특허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특허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연구비와 임상시험 비용, 그리고 실패의 위험이 수반되며, 특허가 보장하는 일정 기간의 독점적 수익이 없다면 애초에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자본이 모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특허 제도가 원래 의도했던 '혁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목적을 넘어,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구할 지식에 대한 접근 자체를 봉쇄하는 도구로 변질되는 지점이다. 밴팅이 인슐린 특허를 1달러에 양도했던 그 정신과, 오늘날 소발디와 인슐린과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가격 전쟁 사이의 거리는, 과학이 발견한 지식과 그 지식이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행위 사이에 자본의 논리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은 이미 답을 찾았다. 그 답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닿게 만드는 일은, 이제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특허 권력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달린 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