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화의 함정 — 나무는 보지만 숲은 잃다
by ㅅㅅ
깊이의 대가
현대 과학은 극도의 전문화를 통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왔다. 한 명의 연구자가 평생을 바쳐 단백질 하나의 특정 도메인, 혹은 특정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하나의 결합 메커니즘만을 파고드는 것이 오늘날 과학의 표준적인 생존 방식이다. 이러한 깊이는 분명 인류의 지식을 전례 없이 정밀한 수준까지 확장시켰다. 그러나 이 깊이에는 대가가 따른다. 나무 하나의 세포 구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데 평생을 쓴 연구자가, 그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숲 전체의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연구가 그 숲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글에서는 과학의 극단적 전문화가 낳는 인식론적, 제도적, 사회적 함정들을 살펴본다.
1. 학문 분과의 세분화와 소통 불능
20세기 초까지 과학은 비교적 소수의 거대 분과(물리학, 화학, 생물학)로 나뉘어 있었지만, 오늘날 이 분과들은 수백 개의 하위 전문 영역으로 쪼개져 있다. 생물학 하나만 보아도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발생생물학, 진화생물학, 생태학, 신경생물학 등으로 나뉘고, 이들은 다시 각각 수십 개의 더 좁은 전문 학회와 저널을 갖는다. 문제는 이렇게 세분화된 분과들 사이에 실질적인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자생물학자가 생태학 저널을 읽는 경우는 드물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는 각 분과가 고유한 전문용어, 방법론적 기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질문'인지에 대한 서로 다른 암묵적 합의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통 불능은 실제로 중요한 발견이 분과의 경계에 막혀 수십 년간 활용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과 위궤양의 관계다. 호주의 배리 마셜(Barry Marshall)과 로빈 워런(Robin Warren)은 1980년대에 위궤양이 스트레스나 위산 과다가 아니라 세균 감염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이 발견은 소화기내과학계의 기존 통념(위궤양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는 오랜 정설)과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에 거의 10년 가까이 학계에서 무시당했다. 결국 마셜은 스스로 헬리코박터균을 삼켜 위염을 유발시키는 실험을 감행해 자신의 가설을 입증했고, 이 발견은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사례는 전문화된 학계가 자신의 분과 내 정설에 얼마나 강하게 고착되어 있으며, 그 정설을 재검토하도록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극단적인 증명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2. 환원주의의 성공과 그 한계
전문화된 과학의 핵심 방법론은 환원주의(reductionism)다—복잡한 현상을 더 작은 구성요소로 분해해 각 요소를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이 방법은 유전자 하나, 분자 하나, 세포 하나의 작동 원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압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이 환원주의적 접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 예상치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인간의 유전자 수는 애초 예상(10만 개 이상)보다 훨씬 적은 약 2만~2만 5천 개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복잡한 질병(당뇨병, 조현병, 심혈관질환 등)은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의 유전자와 환경 요인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여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유전자 하나 = 형질 하나'라는 환원주의적 도식이 지나치게 단순했음을 보여주었고, 이후 과학계는 유전자들의 상호작용 네트워크, 후성유전학(epigenetics), 그리고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을 다루는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이라는 통합적 접근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환원주의가 낳은 정밀한 부분적 지식들을 다시 통합하는 데에는 환원주의 자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적 노력—숲을 보는 시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3. 초전문화가 낳는 연구비와 평가 구조의 왜곡
학문의 세분화는 연구비 배분과 평가 시스템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좁고 잘 정의된 전문 영역 안에서 안전하게 예측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는 연구비 심사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는 반면, 여러 분과를 넘나드는 융합적이거나 개념적으로 대담한 연구는 어느 심사위원회에도 명확히 속하지 못해 오히려 불리한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문가 심사(peer review)'라는 제도 자체가 본질적으로 특정 전문 분과의 기존 틀 안에서 훈련된 심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이러한 경향은 결과적으로 연구자들이 자신의 좁은 전문 영역 안에서 안전하고 점진적인 질문만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든다. 물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퍼즐을 풀어나가는 활동—이 압도적으로 장려되는 반면, 패러다임 자체를 재검토하거나 여러 분과를 가로지르는 혁신적 질문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받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되는 것이다.
4. 전문가의 '터널 시야'와 정책 실패
전문화의 함정은 개별 연구자의 인식 차원을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 영역 안에서는 매우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 판단이 다른 영역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맹점을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이러한 '터널 시야(tunnel vision)'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확산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봉쇄 정책을 권고했지만, 그러한 정책이 아동 발달, 정신건강, 경제적 불평등, 교육 격차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은 다른 전문 영역(발달심리학, 경제학, 교육학)의 몫으로 남겨졌고, 이 영역 간 지식이 정책 결정 테이블에서 충분히 통합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팬데믹 이후 여러 연구에서 제기되었다.
유사한 문제가 환경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전문으로 하는 생태학자와 기후변화 대응을 전문으로 하는 기후과학자가 각각 자신의 영역에서는 최선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두 해법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예컨대 특정 재생에너지 시설이 온실가스 감축에는 기여하지만 특정 서식지의 생물다양성을 훼손하는 경우—이를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학문적, 제도적 틀은 여전히 미흡하다.
5. 융합 연구의 시도와 그 어려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수십 년간 '융합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촉진하려는 다양한 제도적 시도가 이루어졌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나 여러 대학이 융합 연구 센터를 신설하고, 여러 분과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연구비를 배정하는 정책을 도입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실제로 성공적인 융합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 이유는 융합 연구가 단순히 여러 전공의 연구자를 한 공간에 모아놓는 것으로 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분과는 '좋은 연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 논문 작성 관행, 심지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증거 수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다르며, 이 근본적 차이를 조율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융합 연구에 참여하는 개별 연구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속한 원래 분과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그 분과의 평가 기준으로 승진과 연구비를 심사받아야 하는 현실적 제약에 묶여 있다. 즉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 자체가 여전히 분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융합 연구를 장려하는 표면적 정책만으로는 근본적인 전문화의 함정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러 과학정책 연구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6. 대중과의 소통에서 드러나는 전문화의 역설
전문화의 함정은 과학과 대중 사이의 소통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극도로 전문화된 연구자는 자신의 좁은 전문 영역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 지식을 비전문가에게 그 함의와 맥락을 포함해 설명하는 능력은 별도로 훈련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는 과학자가 대중 앞에 섰을 때, 정확하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인 설명이나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오해를 낳는 설명 중 하나로 치우치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소위 '과학의 언어와 민주주의의 언어' 사이의 간극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전문화가 낳은 소통 능력의 결손과 맞닿아 있다.
숲을 다시 보는 법
전문화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정밀한 의학적 진단, 첨단 신소재, 정교한 기후모델은 모두 극단적인 전문화가 만들어낸 깊이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 깊이를 추구하는 동시에, 그 깊이들을 다시 엮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별도의 학문적, 제도적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무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연구하는 것과 그 나무들이 이루는 숲의 생태를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지적 작업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없다. 오늘날 과학이 마주한 가장 시급한 문제들—기후위기, 팬데믹, 인공지능의 사회적 영향—은 하나같이 단일 분과의 깊이만으로는 풀 수 없는, 숲 전체를 조망하는 통합적 시각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전문화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전문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성들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지적, 제도적 다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