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이 경제학의 시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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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책 『화학을 통해 바라본 세상』보다 훨씬 더 사회비평적이고 정책비평적인 책이다. 『화학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 “화학으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는 책”이었다면, 『한국 과학이 경제학의 시녀인 이유』는 “한국에서 과학이 어떤 제도와 경제 논리에 포획되어 있는가”를 묻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1. 책의 기본 성격: 과학 교양서가 아니라 “과학정책 비평서”
이 책의 출발 질문은 매우 도발적이다. “한국에서 과학자들은 왜 과학을 할까?”, “한국은 기술 정책만 있을 뿐 제대로 된 과학 정책이 없다.”라는 두 문장이 책의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그리고 저자는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의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에서 과학이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이해되는 구조에 대해서 비판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화학 지식 자체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과학이 자본주의, 특허, 국가정책, 환경 문제, 한국의 연구 생태계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분석하는 과학사회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책은 특허, 제약, 합성화학, 플라스틱, 하버-보슈법, 피임약, DDT, 탈리도마이드 같은 화학 관련 사례를 통해 과학과 경제의 결합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2. 핵심 문제의식: 과학은 왜 경제 발전의 수단이 되었는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제목 그대로 한국 과학이 경제학의 하위 개념처럼 취급되는 이유다. 책은 “왜 과학기술의 경제적 가치만 헌법 조항에 강조된 것일까?”, “과학기술의 역할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국한시킬 수 있다는 관점의 근거는 무엇일까?”를 핵심 질문으로 제시한다.
이 문제의식은 실제 헌법 조항과 연결된다. 대한민국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헌법상 과학기술은 독자적 문화 가치, 지식 가치, 민주주의 가치, 생명 윤리 가치보다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적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책은 단순히 “과학기술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넘어선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에 기여해 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관계가 수단과 목적의 위계로 고정될 때 과학이 어떤 왜곡을 겪는지 묻는다. 흥미롭게도 2025년 국회입법조사처도 헌법 제127조가 과학기술을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AI·유전자 편집·디지털 감시 등 현대 기술의 윤리적·기본권적 영향을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던 바 있다.
즉 이 책의 제목은 과장이 아니라, 한국 헌법과 정책 언어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과학기술 인식의 한계를 겨냥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3. 전체 구조: 동기 → 특허 → 자본주의 → 환경 → 한국 과학
목차를 보면 책의 논리 구조가 선명하다. 1장 프롤로그, 2장 “과학자는 왜 과학을 할까”, 3장 “과학과 특허”, 4장 “미국의 국립연구소”, 5장 “과학과 자본주의: 과학 엘리트와 과학의 권력화”, 6장 “환경 문제와 과학, 그리고 자본주의”, 7장 “한국 과학의 현실”, 8장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은 단순한 과학사 나열이 아니다. 먼저 과학자의 동기라는 심리적·제도적 문제를 묻고, 이어 우선권과 특허라는 보상 체계를 분석한 뒤,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합해 과학의 권력화와 경제 종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다. 마지막에는 환경 문제와 한국 과학정책의 현실로 내려온다.
특히 3장 “과학과 특허”가 책 전체의 중심축으로 보인다. 이 장은 우선권의 역사, 특허에 기반한 독점, 에테르·아편·모브·아스피린·플라스틱·분유·초콜릿·하버-보슈법·피임약 등의 사례, DDT와 탈리도마이드, 생물 특허와 유전자 정보 특허 논란, 제약회사의 특허 수명 연장 문제, 발견과 발명의 동시성을 다루고 있다.
정리하면 이 책은 과학의 내적 동기와 외적 보상 구조가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과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려는 책이라고 판단된다.
4. 과학자의 동기: 돈, 재미, 명성, 우선권
책의 2장은 “과학자는 왜 과학을 할까”이다. 저자는 과학자의 동기를 단순히 금전적 보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 문제 해결의 즐거움, 연구 결과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최초 발견자로서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이 모두 과학자의 동기라고 설명한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저자가 과학을 순수한 진리 추구로만 이상화하지도 않고, 돈벌이로만 냉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자의 동기를 다층적으로 보는 것 같다. 과학자는 지식 자체의 매력에 이끌리지만, 동시에 최초 발견이라는 우선권 경쟁 속에 놓인다. 최초로 발표한 사람에게 명성이 돌아가는 과학계의 구조는 일종의 “승자독식” 체계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과학 공동체의 내적 보상 체계가 자본주의의 경쟁 원리와 닮아 있음을 포착한다. 과학자는 시장에서 상품을 파는 기업가처럼 행동하지 않더라도, 논문과 발견의 세계에서는 선점, 경쟁, 인정, 독점적 명성을 둘러싸고 움직인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은 자본주의 바깥의 순수한 영역”이라는 통념을 흔든다.
5. 특허 분석: 이 책의 가장 강한 부분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과학과 특허”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특허와 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이 독점과 깊은 관련을 가지며, 자본주의의 발전 또는 심화와 사실상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저자는 과학의 우선권과 지식재산권 제도가 과학자들 사이의 경쟁심리를 자극하고, 그 경쟁이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며, 나아가 슘페터의 혁신과 창조적 파괴, 로머의 기술 혁신 기반 장기 성장과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이 대목은 책의 핵심 논리 아닐까. 과학기술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그 원동력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권, 특허, 독점, 경쟁, 보상이라는 제도적 장치 위에서 작동한다. 저자는 특히 화학 분야가 특허와 자본주의 발전과 깊이 얽혀 있다고 보고,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화학 사례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특허를 무조건 긍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특허가 기술 혁신의 촉진제가 아니라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미 보호받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 비용을 높이고, 특허 침해 소송 위험도 기술 개발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3D 프린팅 기술의 경우도 1980년대부터의 특허들이 만료되기 전까지 관련 기술 발전을 지체시켰다가, 2000년대 이후 특허 만료로 기술 확산이 이루어진 사례로 언급되어 있다.
이 점에서 책의 태도는 균형적이다. 특허가 과학기술 발전을 촉진해 자본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특허가 지식의 공유성과 공공성을 훼손하고 기술 발전을 늦출 수 있다는 역설을 함께 본다.
6. 화학 사례의 역할: 경제와 과학이 만나는 구체적 현장
저자는 화학자답게 추상적인 정책 논쟁을 화학 사례로 풀어낸다. 목차에는 에테르와 수술용 마취제, 아편, 합성화학의 모브와 아스피린, 플라스틱, 분유와 초콜릿, 하버-보슈법, 피임약이 등장한다. 또 DDT와 탈리도마이드, 생물 특허와 유전자 정보 특허, 제약 회사의 특허 수명 연장 문제도 다룬다.
이 사례 선택은 매우 의미 있다. 모브와 아스피린은 합성화학과 산업자본주의의 결합을 보여주고, 플라스틱은 편리함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보여주며, 하버-보슈법은 식량 생산과 전쟁, 산업 비료와 에너지 문제를 함께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피임약은 과학기술이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을 바꾸는 사례이고, DDT와 탈리도마이드는 과학기술의 피해와 규제, 윤리 문제를 보여준다.
즉 이 책에서 화학은 단순한 전공 배경이 아니다. 화학은 과학기술이 상품, 산업, 특허, 시장, 피해, 규제, 윤리와 만나는 가장 구체적인 현장인 것이다. 이 점은 『화학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 물질과 생명과 인간을 철학적으로 연결했다면, 『한국 과학이 경제학의 시녀인 이유』는 화학과 자본주의와 국가정책을 사회적으로 연결한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7. 미국 국립연구소 장의 의미: 공공성과 국가 역할
4장 “미국의 국립연구소”는 책의 논의가 단순한 시장 비판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책 속 인용에 따르면 저자는 로머의 내생성장론을 언급하며, 지식과 기술은 비경합성을 띠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사회적 부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논리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사적 독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지식은 자동차나 스마트폰처럼 한 사람이 쓰면 다른 사람이 못 쓰는 재화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해도 소모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과학 지식은 특허와 독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는 긴장을 안고 있다.
미국 국립연구소 장은 이 긴장을 다루는 장으로 볼 수 있다. 국립연구소는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적·기초적·고위험 연구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장을 통해 저자는 과학과 경제의 관계를 “시장에 맡기면 된다”로 단순화하지 않고, 국가와 공공 부문의 역할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8. 과학과 자본주의: 과학 엘리트와 권력화
5장 제목은 “과학과 자본주의: 과학 엘리트와 과학의 권력화”이다. 저자는 과학기술 발전이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핵심 혁신이며, 오늘날의 과학 또는 과학의 구조는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지배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꽤 강하다. 저자는 과학이 자본주의에 기여한다는 수준을 넘어, 과학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적 보상 구조, 경쟁 원리, 권력 분포 속에서 작동한다고 본다. 이때 과학 엘리트는 지식 생산자일 뿐 아니라 자금, 네트워크, 정책, 특허, 연구기관, 평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 주체가 된다.
이 주장은 한국 과학계에도 직접 연결된다. 연구비 수주, 논문 실적, 특허, 기술이전, 산학협력, 국가전략기술, 글로벌 경쟁력 같은 지표들이 과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될 때, 과학자는 진리 탐구자이면서 동시에 성과를 생산해야 하는 경제 주체가 된다. 책의 제목 “경제학의 시녀”는 바로 이 조건을 비판하는 표현으로 읽힌다.
9. 환경 문제: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6장 “환경 문제와 과학,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 책의 윤리적 중심에 해당한다. 책 속 인용에 따르면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많은 혜택을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는 환경 문제와 같은 피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특히 기후 변화 또는 기후 위기는 단순히 기술 발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공존할 것인가라는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관점이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 흔히 기후위기 대응에서 과학기술은 탄소포집, 재생에너지, 원전, 배터리, 수소, 전기차 같은 기술 해결책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저자는 환경 문제가 과학기술 문제인 동시에 경제 문제이며, 개인·기업·정부 모두가 관여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즉 과학은 환경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과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누가 피해를 감수할 것인가, 성장 중심 경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같은 질문은 과학 바깥의 정치·경제·윤리적 판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책은 과학기술 낙관론을 경계한다.
10. 한국 과학의 현실: “추격 성공” 이후의 철학 부재
7장 “한국 과학의 현실”은 책의 결론부에 가깝다. 저자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이 중공업 진흥, 박정희 정권의 “과학입국 기술자립” 등 국가 주도 육성 사업으로 상징되는 “추격의 성공과 탈추격의 실험”이라는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동시에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는 철학적 고민의 부실함, 뒤집힌 선후관계, 개념 정의의 혼선, 과학기술계 노동 문제와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분석은 한국 과학기술정책 연구의 큰 흐름과도 연결된다. 『현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추격의 성공과 탈추격 실험』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을 추격기와 탈추격기로 나누어 설명하며, 추격기에는 강력한 과학기술 국가주의와 정부 주도 정책, 산업 형성을 위한 인력·연구개발 동원이 특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탈추격기에는 기초연구, 사회문제 해결, 시민 참여 같은 기조가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경로의존성과 추격형 방식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 지점을 현직 과학자의 언어로 다시 묻는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오히려 과학을 경제성과 산업성과 국가경쟁력의 하위 수단으로 보는 관성을 만들었다. 책의 문제의식은 “이제는 돈 되는 과학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11. 책의 장점
1) 제목은 강하지만 논의는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신학을 기반으로 하였던 중세 스콜라 철학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구 또는 격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은 종교의 시녀"를 패러디한 듯한 “경제학의 시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자극적이다. 그러나 책 소개와 인용을 보면 저자는 과학과 경제의 관계를 단순히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고, 경제적 지원이 과학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관계가 일방적 종속으로 굳어질 때 생기는 문제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2) 특허와 우선권을 통해 과학의 현실을 잘 포착한다: 과학자는 순수한 진리 탐구자라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과학은 우선권, 명성, 연구비, 특허, 독점, 산업화와 깊이 얽혀 있다. 저자는 이 구조를 과학자의 동기와 특허 제도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3) 화학 사례가 풍부하다: 이 책은 과학정책 비평서이면서도 추상적인 정책 담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모브, 아스피린, 플라스틱, 하버-보슈법, 피임약, DDT, 탈리도마이드, 생물 특허, HIV 진단·치료제 등 구체적인 과학사 사례를 통해 과학·기술·시장·윤리의 관계를 보여준다.
4) 정책 입안자에게도 읽힐 수 있는 문제 제기를 한다: 이 책에 대해 독자들에게 “한국에서 과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돕고,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한국에서 과학을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수단을 점검하도록 한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라 과학정책에 대한 비판적 제안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12. 한계 또는 비판적으로 읽을 지점
1) “과학”과 “과학기술”의 구분이 중요하다: 이 책은 제목에서 “한국 과학”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논의의 상당 부분은 과학기술, 특허, 산업기술, 제약, 정책, 경제성과 관련된다. 따라서 독자는 “기초과학”, “응용과학”, “기술개발”, “산업혁신”이 책에서 어떻게 구분되는지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 자신도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개념 정의 혼선을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인다.
2) 제목의 은유가 너무 강할 수 있다: “시녀”라는 표현은 종속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장점이 있지만, 과학과 경제의 실제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고 복잡하다. 따라서 이 책은 반경제주의적 선언이 아니라, 과학을 경제의 수단으로만 보는 관점을 비판하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
최종 평가
『한국 과학이 경제학의 시녀인 이유』는 하상수 교수의 이전 책 『화학을 통해 바라본 세상』보다 훨씬 더 제도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책이다. 전작이 화학자의 세계관을 통해 물질·생명·의식·자유의지를 묻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화학자의 경험과 과학사 사례를 통해 한국에서 과학이 어떤 보상 체계, 특허 제도, 자본주의 논리, 국가정책 속에서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한국 과학의 문제는 돈이 부족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을 왜 해야 하는지, 과학의 독자적 가치가 무엇인지, 과학이 경제 발전 말고 어떤 공공적·윤리적·문화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약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특허와 우선권, 화학산업 사례를 통해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문제 제기는 한국 과학정책이 기술정책과 경제정책에 흡수되어 과학 자체의 의미를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보고 싶은 독자, 과학자의 동기, 특허, 연구비, 성과주의 문제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대학원생,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환경 문제의 관계를 알고 싶은 독자, “과학은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공공적 가치인가”라는 질문에 관심 있는 정책 담당자에게 특히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 과학이 왜 노벨상을 못 받는가” 같은 단순한 성과 담론이 아니라, 한국에서 과학이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문제의식은 상당히 본질적이다.